‘소확횡’ vs ‘직장인 거지 배틀’ – 커피믹스로 평가해보는 우리의 윤리의식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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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3-30 09:11 조회1,5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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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횡’ vs ‘직장인 거지 배틀’ – 커피믹스로 평가해보는 우리의 윤리의식수준

 

남 몰래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한 움큼씩 챙겨 집에 가져가 모아뒀다가 당근마켓에 팔아 소소한 용돈벌이를 하는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일삼는 직장인들이 있다. 심지어 SNS에 소확횡 인증사진과 함께 이 소소하고 즐거운 일탈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직장인들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대다수가 소확횡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안에서의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이다. 이 분위기를 타고 중고 거래 플랫폼은 티백, 햇반, 과자 등 식품부터 볼펜, A4용지, 테이프 등 사무용품까지 직장인들의 은밀한 소확횡 창구로 자리잡았다.

관행처럼 만연해 있는 소확횡은 회사가 알면서도 문제삼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적으로는 절도에 해당된다.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있다. 실제로 2013년 회사 창고에서 커피믹스를 훔쳐 되팔다가 걸린 식품업체 직원이 절도혐의로 입건된 사건도 있었다. ‘그까짓 커피믹스 좀 가지고 뭘 절도혐의까지…’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그 직원이 빼돌린 커피믹스의 양이 3400만원 어치라면? 이제 생각이 달라지는가? 소도둑은 확실히 바늘도둑보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소확횡이 만연한 이 시대에 한편에서는 각자 자신의 직장이 더 궁상맞다고 주장하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근무 중에 커피 믹스를 마시려면 장부에 이름을 적어야 하고, 사장이 이 장부와 커피 믹스 수량을 맞춰본다, 다 쓴 수정테이프를 보여줘야 리필을 받는다, 다 쓴 두루마리 휴지심을 모아놨다가 보여줘야 새로 사준다.. 등 온라인상에서 직장인 거지 배틀이 이슈다.

이런 끔찍한 회사에 취업할까봐 무서운가? ‘중소기업 복지가 이러니 다들 대기업에 가려고 하지..’ 혀를 찼는가? 그러나 이는 비단 중소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빠진 경기 탓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기업들이 복지혜택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에 인수된 트위터는 청소 용역업체와 계약을 중단하면서 화장실의 화장지도 제공하지 않아서 직원들이 직접 화장지를 사 들고 다닌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도 비용절감을 위해 궁상정책을 쓰고 있다면, ‘회사 내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통 분담은 감내해야지..’라고 생각이 바뀌는가?

우리는 왜 이런 웃픈 혹은 기이한 문화적 현상들을 접하게 되는 걸까? 왜 직원들은 회사의 호의에 감사하는 대신 뒷통수를 치려하고, 왜 회사는 직원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대신 잠재적 도둑 취급하려 하는 것일까?

직원들의 커피믹스 값을 아껴서 부자되는 회사는 없다. 하지만 윤리의식이 바닥인 직원들이 모여있는 회사가 승승장구할리도 없다. 평생직장 개념이 퇴색한 이상 회사는 직원들에게 조직충성도를 요구하기 어렵다. 하지만 직원을 우리회사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회사의 재정을 축내는 사람들로 바라본다면 어느 직원도 회사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직원을 믿어줄 때 직원들도 회사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자 할 것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로 삼아 일탈행동을 하거나, 비용절감을 위해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기 이전에 개인도 조직도 모두 자신의 윤리의식을 먼저 점검해보자. 누구든 궁지에 몰리면 비윤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커피믹스 하나에 직원들이 양심을 팔도록 방치하지 말고, 소소한 이슈에 관해서라 하더라도 직원간의 의견을 취합해 사규 등에 관련 규정을 마련해두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서로간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신뢰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때문에 근속년수가 점차 짧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마음을 쓰는 것은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영리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신뢰가 없는 관계에서 우리가 무슨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기본적인 제도부터 정비하고, 동물과 다르게 우리에게는 이성과 도덕이 존재한다는 점을 서로 믿으며, 그 믿음에 부응하도록 노력하는 시간들이 쌓여 신뢰라는 엄청난 자산이 만들어 질 것이다.  

 

- 글  최보인 박사   

 

참고: 인터넷 기사

https://www.sedaily.com/NewsView/29N3P5S0WD

https://www.yna.co.kr/view/AKR20210504121600797?input=1179m